[OC] '사람들의 격려가 큰 힘 됐죠'···한국서 국토종단 마친 정찬열 시인
"산천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더군요."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화제를 모은 국토종단 도보여행을 마치고 11일 귀국한 정찬열(61.사진) 시인은 "힘든 여정이었지만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는 소감을 털어놓았다. 지난 3월30일 한반도 최남단인 전남 해남 '땅끝마을'을 출발한 정씨는 지난 3일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 도착 35일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본지 3월27일 A-13면> "언젠가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다"는 개인적 이유와 6.15 미주서부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경색된 남북관계의 해빙과 평화 통일을 기원한다는 명분이 합쳐진 정씨의 국토종단은 한국의 신문 방송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정씨는 약 500마일 거리를 주파했다. 처음 16일은 부인 정영희씨와 함께 했지만 문경세재부터는 혼자 걸었다. 위험한 고비도 수 차례 겪었다. "강진에서 차도 한 켠을 따라 걷는데 난데 없이 강풍이 부는 거예요. 바람에 밀려 마주 오는 차와 부딪힐 뻔 했습니다. 고성에선 차가 엄청난 속도로 절 스쳐 갔어요. 아마 운전자가 졸았나 본데 그 때 '인명재천이 아니라 인명재차'란 생각이 들었어요." 장대비에 푹 젖은 채 차바퀴가 일으키는 물보라를 뒤집어 쓸 땐 '이게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란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온기' 덕분에 힘을 냈다고 한다. 강진에선 'TV에서 봤다'며 잠시 쉬었다 가라던 자영업자를 만났고 무주에선 경찰 간부의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집사람과 인적 없는 산길을 가는데 순찰차가 왔어요. 뭐 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했다는 거죠. 잠시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자기 집에서 자고 가라는 거예요." 신문을 보고 전화한 공인회계사와는 평창~영월 구간을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민족의 정이란 게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만나며 걷다 보니 어느 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더군요." 정씨는 이번 여정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낙산사 돌계단에 '길에서 길을 묻는다'란 말이 적혀 있어요. 길에 있으면서도 내가 길에 있는 사실을 모른다는 말이겠죠. 고성까지 가는 동안 내내 그 문구가 떠오르더군요. 희망도 절망도 나로부터 비롯되는데 그 이유를 밖에서 찾아 온 것은 아닌가 하며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군요." 통일전망대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했다는 정씨는 "죽기 전에 꼭 다시 가 백두산까지 걷고 싶다. 그런 날이 꼭 오고야 말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환 기자 limsh@koreadaily.com